[한국농어촌방송=김세곤 칼럼니스트] 1478년(성종 9년) 4월29일에 성종을 친견(親見)한 종친(宗親) 이심원(1454∽1504)은 임사홍의 아버지인 의정부 좌참찬 임원준이 소인이라고 아뢴 뒤에, 임사홍(1445∽1506)의 비리에 대하여도 아뢰었다.

사진=창덕궁 인정전

"전하께서 한 사람의 간신을 보호하고자 하여 스물 한 명의 군자를 내치시니, 이는 소인이 더욱 꺼리는 바가 없게 되는 소이(所以)입니다. 신이 사관(史官) 표연말에게서 듣건대, 이전의 현석규의 일은 모두 임사홍이 몰래 사주(使嗾)한 바로서, 그때 한 대간(臺諫)은 바로 임사홍의 심복이었습니다. 우승지 임사홍은 도승지 현석규를 사사로이 살펴서 대간에게 전했으니, 대간들이 임사홍의 술책에 빠져 그 지경에 이른 것입니다."

‘이전의 현석규 일은 임사홍이 몰래 사주한 것’이라는 발언은 곧 터질 폭탄이었다.

‘이전의 현석규 일’이란 현석규(1430∽1480)가 1477년(성종 8년) 7월에 도승지로 있을 때 대간들의 탄핵을 받은 일이었다. 그 사연은 1477년 7월 8일에 동부승지 홍귀달이 도승지 현석규가 어전에 없는 가운데 성종에게 과부 조씨의 재산을 빼앗으려는 조식의 사건을 옹호하는 발언을 했다. 이러자 현석규는 홍귀달을 질책했는데 임사홍의 사주를 받은 박효원은 현석규를 탄핵했다. 이어서 유자광, 김언신이 현석규가 소인이라고 탄핵했으나, 성종은 현석규를 옹호했다. (연재 글 36회부터 45회 참조)

그런데 이 일이 1478년 4월에 이심원의 아룀으로 다시 불거진 것이다.

이심원의 말을 들은 성종은 이심원에게 물었다.

"현석규는 소인인가?”

이심원이 대답했다.

"현석규는 마음이 바르지 못하고 온후·관화(寬和)한 도량은 없으나 청개(淸介)하여 일을 당하면 용감하게 말하니, 무상(無狀)한 소인은 아닙니다."

이 말에 임금이 놀라며 말했다.

"임사홍이 몰래 사주하여 현석규를 공격하였으니, 그는 간사한 자이다. 네가 임사홍 부자(父子)와 더불어 혼인한 인연이 있었기에 망정이지, 만약 그 간사함을 자세히 알지 못하였으면 어찌 감히 이같이 하겠는가?"

이러자 이심원이 말했다.

"신이 비록 소원(疏遠)하고 미천하나 마음은 항상 사직(社稷)에 있습니다. 두보(杜甫)의 시에 이르기를, ‘해바라기 해를 따라 기울어지니, 만물의 성품은 빼앗을 수 없구나.’ 하였으니, 신이 진실로 이와 같습니다. 만약 국가가 위태로우면 신이 먼저 사직을 위해 죽어야하기 때문에 감히 이처럼 주륙(誅戮) 당함을 무릅쓴 것입니다.

만약 전하께서 신의 말을 듣지 아니하신다면, 신은 청컨대 주살(誅殺)을 당하여 하늘에 계시는 조종(祖宗)의 영령(英靈)께 저버림이 없게 하소서. 《역경(易經)》 박괘(剝卦)에 이르기를, ‘큰 과일은 먹히지 아니한다. (이는 군자의 도(道)가 없어지지 아니하고 남아 있어서 다시 살아난다는 뜻임)고 하였는데, 이제 홍문관·예문관 관원과 대간 등이 모두 청함을 얻지 못하였으므로 신이 죽음으로써 감히 아뢰니, 원컨대 전하는 신의 외로운 충성을 살피소서."

이어서 그는 통곡하며 말하였다.

"신이 사직(社稷)의 연고 때문에 감히 이같이 하는 것입니다. 임사홍은 조부의 사랑하는 사위이며 명문 친족입니다. 신의 아비가 평소에 지병(持病)이 있는데, 만약 이 일을 들으면 반드시 놀라고 슬퍼하며 신을 심히 그르게 여기어 보지 않으려고 할 것입니다. 신이 또한 무슨 면목으로 다시 조부모와 부모를 보겠습니까?"

사진=창덕궁 인정전

성종은 "경의 아비가 어찌 경을 그르게 여기겠는가?"고 말하자, 이심원은

"신이 나라를 위해 어버이를 잊었으니, 신은 진실로 낭패입니다."라고 말하면서 통곡하면서 물러갔다.

이윽고 도승지 손순효가 아뢰었다.

"홍문관·예문관 관원의 말한 바가 공정하였는데, 언사(言事) 때문에 파직되었으니, 사체(事體)에 어떠합니까? 하물며 홍문관과 예문관의 20여 관원은 모두 선임(選任)된 자인데, 하루아침에 모두 파면하고 새 사람을 얻고자 하면 인재를 구하기가 또한 어렵습니다."

이는 ‘한 사람의 간신 때문에 21명의 군자를 내쳤다’는 이심원의 발언과 상통한다.

이러자 성종이 전교했다.

"나도 그렇게 생각한다. 아직 파직시키지 말라. 이제 이심원의 말을 들었는데, 만약 참으로 그렇다면 임사홍은 참으로 소인이다. 곧 임원준 부자와 표연말 등을 불러서 묻고, 또 정승과 육조의 참판 이상과 대간을 불러서 참여하여 듣게 하라.”

(성종실록 1478년 4월29일 1번째 기사)

성종은 이심원의 말을 듣고 진실을 알게 된다. 임사홍의 간사함을 캐도록 후속조치를 내린다.

이렇게 이심원이 성종에게 임원준과 임사홍의 일을 아뢴 후에, 보성군(寶城君 1416~1499) 이합(李㝓)은 친손자 이심원(보성군의 4남 평성군 이위의 아들)의 일로 대죄를 청했다. 효령대군(태종의 둘째 아들)의 셋째 아들인 보성군은 임사홍의 장인이어서 임사홍은 이심원의 고모부였다.

"신의 손자 이심원이 전일 여러 번 광패한(狂悖 미친 사람처럼 사납고 막되 먹은)말을 하여, 신이 이심원의 아비와 더불어 놀람을 이기지 못하여 이심원을 엄하게 꾸짖었으나, 이심원이 오히려 마음을 고치지 아니하고 이제 또 고모부 임사홍을 헐뜯었으므로, 인정과 천리(天理)에 어찌 이럴 수가 있습니까? 신이 자손을 제대로 가르치지 못하여 이와 같게 하였으니, 신은 대죄(待罪)하기를 청합니다.”

성종은 전교하기를, "이심원의 말은 공적(公的)인 것이고, 사적(私的)인 것이 아니었으니, 경(卿)은 대죄하지 말라." 하였다.

(성종실록 1478년 4월29일 2번 째 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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