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농어촌방송= 최양부 바른협동조합실천운동본부 이사장] 1843년 말 로치데일의 지도자들과 노동자들은 다시 모였다. 그리고 40여 명의 사람이 새로운 협동조합설립에 찬동하고 1인당 1파운드의 출자금을 모으기 시작했다. 그들은 자신에게 더 나은 삶의 세상을 가져다줄 수 있는 이상적인 협동조합설립을 논의하기 시작했다.

 그들은 윌리엄 쿠퍼, 찰스 호와스, 제임스 댈리와 같은 협동조합 운동의 오언주의자였다. 그들은 존 콜리어와 같이 개혁정치의 영향을 받았고, 제임스 스탠드링, 존 앱스던과 같이 협동조합 운동에도 참여했던 경험을 가진 사람들이었다.

 (브렛 페어바이든) 로치데일에 축적된 사회경제적, 정치적 활동 경험을 토대로 그들은 어떻게 하면 협동조합이 자신들의 고통을 해결해 줄 수 있는 사회경제적 기관이 될 수 있을까를 고민하고 토론했다. 그것은 자신들이 지키고 실천해야 할 작동 가능한 규약을 만드는 일이었다.

로치데일 협동조합설립의 선구자들
로치데일 협동조합설립의 선구자들

 거의 1년에 걸친 노력 끝에 마침내 1844811일 창립총회를 열고 챨스 하워스를 조합장에 선출했다. 1024일 정관을 만들고 등기를 마쳤다. 로치데일 협동조합의 최초의 정관은 오언주의자였던 찰스 호와스와 재임스 댈리가 작성했다고 한다. 당시의 협동조합은 우애조합법(Friendly Society Act)에 따라 법적으로 등록을 할 수 있었기 때문에 그들은 1932년 오언주의자들이 밝힌 협동조합의 원칙과 1837년 설립된 오언주의 공제회의 정관을 참조했다고 한다

 로치데일 협동조합은 등록요건을 갖추기 위해 그동안 만들어졌던 수많은 협동조합의 정관들을 참조하면서 만들어진 것이다. 그런 점에서 로치데일 협동조합의 최초의 정관은 그들이 주어진 제도적 환경 속에서 어떠한 협동조합을 만들고 어떻게 운영하려고 했는지를 보여주는 중요한 문건이라고 할 수 있다. 마침내 마지막까지 남은 28명의 조합원이 낸 28파운드의 출자금으로 1221일 최초의 식료품 가게를 열었다.

중제 :그런데 왜 공정() 선구자인가?

 로치데일 협동조합 설립자들은 자신들의 협동조합 이름을 로치데일 공정() 선구자 협동조합(The Rochidale Society of Equitable Pioneers)'라고 지었다. 그들이 공정() 선구자를 협동조합의 이름으로 채택한 것은 이 협동조합을 통해 공정과 평등과 정의를 실천하여 바른 사회를 만드는 선구자적 책임과 역할을 다 하겠다는 결의와 각오를 세상에 알린 것이라고 말할 수 있다.

“‘공정(equity)’은 로버트 오언이 가장 좋아하는 단어라고 한다. (브렛 페어바이든) 영어의 ‘equity’바르고 옳음을 뜻하는 자연법이나 천부적 권리에 입각한 정의와 공의(justice according to natural law or right)’ 그리고 편견과 차별이 없는 공평(freedom from bias or favoritism)’의 의미를 포함하고 있다. 그들은 모든 이윤을 공정하게 나누고, 속이지 않고 정직하고 바른 거래와 교환을 하며, 의사결정 등 협동조합의 조직과 운영에 있어 모두가 의무와 책임을 평등하게 나누어지는 등 정의와 평등이 살아있는 거짓 없는 정직한 협동조합을 생각한 것이다. 그리고 이를 실천하고 혁신하는 선구자(The Pioneer)’가 되기를 원했다. 원래 선구자는 당시 오언주위자들이 주축이 된 한 노동자단체 기관지의 이름이었다고 한다. (브렛 페어바이든)

 로치데일 선구자들의 '필요와 열망(needs and aspirations)'은 당장 물질적, 경제적 어려움의 해결과 함께 더 정의롭고 공정하고 공평한 바른 사회건설이란 높은 이상에 있었음을 유추해보게 하는 대목이다. 무엇보다도 모든 이윤의 배분과 거래의 공정은 어쩌면 자조와 함께 협동조합을 관통하는 가장 중요한 도덕적 기준이며 협동조합을 다른 사회경제적 기관이나 단체들과 구분 짓게 하는 절대적 기준이 아닌가 생각한다. 로치데일 협동조합의 창립목적과 규약들은 더욱 이러한 생각들을 뒷받침해 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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