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농어촌방송=김세곤 칼럼니스트] 1478430일에 성종은 명하여 홍문관·예문관의 관원을 복직시켰다. 이 날 임사홍의 부친 임원준이 탄핵 내용에 대해 변명 상소를 올렸으나 성종은 알았다고만 하였다. 이윽고 성종은 임원준을 해임하고, 허종을 의정부 좌참찬으로, 손순효를 도승지로 삼았다. (성종실록 14784305번 째 기사)

51일에 성종은 "내가 의금부의 국안(鞫案)을 보니, 유자광과 김언신이 같이 의논한 것이 명백하다. 김언신과 유자광이 같이 의논한 여부를 국문하라."고 전교하였다.

조금 있다가 우부승지 이경동이 의금부의 국안을 가지고 김언신·유자광·임사홍의 일을 아뢰었다 (성종실록 1478512번째 기사)

"유자광의 공사(供辭)에 이르기를, ‘상소할 때에 김언신과 같이 의논하지 않았고, 그 뒤에 김언신을 보고 서로 이르기를, 나의 상소가 자네가 말한 것과 같으니, 사람들이 반드시 같이 의논했다고 할 것이다.하였고, 애초에 임사홍이 은근히 사주함을 들은 것은 아니다. 내가 임사홍·한한과 더불어 홍귀달의 집에 가서 들었을 뿐이다.’라고 하였습니다.

김언신의 공사에는, ‘내가 정랑이 되었을 때에 임사홍과 서로 만났는데, 임사홍이 현석규의 일을 말하기에, 내가 듣고 통분함을 이기지 못하였는데, 현석규가 지평에 제수되었다는 것을 듣고, 곧 죽을힘을 다하여 반대하려고 하여 참의 손순효에게 물으니, 손순효는 웃기만 하고 말하지 아니하였다. 그 뒤에 여러 번 임사홍과 서로 만났으나, 진실로 은근히 사주함을 듣지는 않았다.’고 하였습니다.“

이에 성종은 "유자광과 김언신이 그때에 현석규를 소인(小人)이라고 극언하였으니, 김언신이 반드시 임사홍의 술책에 빠져서 말한 것이다."라고 전교했다.

이경동이 다시 아뢰었다.

"그때에 현석규가 두 자급을 뛰어올랐으니, 김언신만 탄핵하였을 뿐만 아니라 신의 생각으로도 지나치다고 여겼습니다. 지금에 와서 보면, 전하의 밝으심이 아니면 현석규와 임사홍의 간사하고 바른 것을 어찌 알겠습니까? 신은 본래 임사홍의 사람됨을 알지 못하였지만, 신이 중시(重試) 에 합격하고 임사홍이 초시(初試)에 합격하였는데, 사람들이 모두 임사홍을 교만하다고 하였습니다. 임사홍은 재상의 아들로서 소년으로 과거에 올라, 신이 동부승지가 되자 임사홍은 도승지가 되었습니다. 그리하여 함께 있은 지 겨우 20여 일이 되었는데, 행동이 거만하고, 동료를 대하는 것도 이와 같았으므로, 신이 그제야 비로소 그 사람됨을 알았습니다. 이 같은 일이 발로(發露)되었으면 마땅히 엄히 징계하여 뒷사람을 경계해야 합니다. 만일에 그렇지 아니하면, 승지가 은근히 대간을 부추기고, 대간이 탄핵하여 안팎으로 서로 호응하면, 나라 일이 장차 날로 그릇될 것이니, 그런 풍습을 커지게 할 수 없습니다."

성종이 말했다.

"이 같은 일은 탄로 나기가 어려운데, 지금 드러났으니 내가 장차 엄하게 징계하겠다. 표연말은 인견(引見)하던 날에 말하지 아니하고 파직하던 날에 이심원에게 말하였으니, 매우 간사하다. 그 경유를 국문하라."

이어서 성종은 도승지 손순효에게 전교하기를, "네가 형조참의 때에 김언신의 말을 듣고 웃으며 답하지 아니한 것은 무엇 때문인가?"

손순효가 대답하였다.

"김언신이 신에게 묻기를, ‘현석규는 어떠한 사람인가? 내가 장차 탄핵하려고 한다.’ 하기에, 신이 답하기를, ‘그대의 물음이 부당하니, 내가 답하는 것도 부당하다. 가령 현석규가 잘못하였을지라도 내가 말하는 것이 부당하고, 잘하였을지라도 말하는 것이 부당하다.’고 하자, 김언신이 말하기를, ‘나는 영공(令公)이 반드시 말할 것이라고 여겼기 때문에 묻는 것이다.’라고 하였습니다."

이에 성종은 "알겠다."고 말하였다.

(성종실록 1478513번째 기사)

53일에 김언신이 옥중에서 옷 한 폭을 찢어 글을 써서 올렸는데, 그는 임사홍의 은밀한 사주를 받아 현석규를 탄핵하지 않았다고 극구 변명했다.

사진=의금부 터 (종각 전철역 1번 출구)

유자광도 옥중에서 글을 올렸다. 그는 전하께서 현석규의 음험하고 간사함을 살피지 못하실 것을 깊이 두려워하고, 또 현석규가 장차 전하의 정치를 더럽힐까 염려하여, 차마 잠자코 있지 못해서 그 듣고 본 바를 마음대로 다 쓴 것이며, 현석규에게 무슨 혐의가 있겠으며, 현석규가 신에게 무슨 마음이 있었겠냐고 하였다.

이에 성종은 전교하였다.

"김언신은 참으로 간사하다. 현석규의 일이 만약 사람들의 입에 올랐으면, 어찌 손순효에게 물을 필요가 있겠는가? 이는 마땅히 형벌로 신문해야 할 것이다. 유자광도 어찌 면할 수 있겠는가?"

(성종실록 1478531번째 기사)

54일에 성종은 경연(經筵)에 나아갔다. ()하기를 마치자, 성종은 좌우에게 강경한 어조로 말하였다.

경들은 유자광이 옥중에서 올린 글을 보았는가? 유자광과 김언신이 모두 임사홍의 사주를 받지 아니하였다고 하나, 이는 속이는 것이다. 만약에 김언신이 평소에 물의를 들었으면 손순효에게 묻지 않았을 것이다. 이것 또한 바르지 못한 것이다. 몰래 사주한 일을 임사홍이 이미 승복하였는데, 오직 유자광과 김언신만 불복하니, 다시 물어서 승복하지 아니하면 형신(刑訊)하라.”

(성종실록 1478541번째 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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