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동근 동국대 언론정보대학원 교수 / 전 imbc 사장
하동근 동국대 언론정보대학원 교수 / 전 imbc 사장

요 며칠 사이 그동안 보관하고 있던 옛날 사진들을 디지털 파일로 옮겨놓기 위한 작업을 하다가 참 오래된 사진 몇 장이 손에 잡혔다. 60년대 초반 초등학교 1학년 때의 봄 소풍 단체사진과 3학년 때 부산에서 산청으로 여름 휴가차 놀러온 아버지의 친구분이 찍어 준 사진으로 산청 경호강변 수계정 절벽 아래 여름이면 늘 멱을 감고 놀던 너럭바위에서 막내동생과 같이 나란히 앉아있는 모습이 눈길을 끌었다. 50년도 더 된 빛바랜 흑백 사진 두 장을 들여다보다 문득 배경이 되고 있는 산들이 모두 헐벗었다는 사실을 새삼 깨달았다. 먼지 나는 자갈길, 신작로를 신나게 달려가는 시외버스와 그 뒤로 보이는 작은 나무 몇 그루가 듬성듬성 보기 흉하게 서 있는 벌거벗은 산, 60년대 당시 고향의 산은 말 그대로 민둥산 그 자체였다.

고향의 옛 민둥산 사진을 들여다보면서 생각나는 것이 한일합병 이전 1904년에 완공된 경부선 열차를 타고 부산에서 서울로 올라오는 동안 주변 산에 제대로 된 나무 한 그루조차 볼 수 없었다는 다소 과장된 이야기와 함께 대전 부근 어느 지역의 헐벗은 산하를 찍은 사진과 수년 전 북한을 방문했던 재미교포가 평양에서 신의주로 가는 경의선 열차 안에서 촬영한 북한의 민둥산 동영상이었다. 이 세 가지 사안을 종합해보면 한반도의 산은 최소 120~130년 전에는 대부분 민둥산이었다고 할 수 있다. 최근 한반도 산림조성 현황을 보여주는 위성사진을 보더라도 휴전선을 기준으로 해서 남쪽은 짙은 녹색 그 자체인데 북쪽은 백두산과 개마고원 일대의 일부 지역을 제외하고는 흰색이나 거의 회색을 보여주고 있다.

예부터 국가 경영의 가장 큰 덕목을 인치, 다음으로 치산치수를 들었다. 조선이 망국의 길을 걷게 된 것도 인구 증가와 함께 산림의 황폐화가 급속도로 진행되면서 그 여파로 농업이 쇠퇴하기 시작했고 이 같은 환경변화에 적절하게 대처하지 못한 것이 한 원인으로 지적되고 있다. 북한의 경제 역시 여전히 가난이란 질곡을 벗어나고 있지 못하는 것도 같은 맥락에서 해석이 가능하다. 북한도 연료정책의 부재에서 북한 농업경제의 파탄이 비롯되었다는 것이 개인적인 견해다. 물론 핵무기 개발을 비롯한 군사비에 과도한 예산을 지출해 민생의 경제 수준을 끌어 올리는 정책을 펴지 않고 있는 점이 더 큰 비중을 차지하겠지만, 먹고사는 가장 큰 문제인 먹거리, 즉 북한 농업경제의 파탄은 북한 정부가 땔감문제를 해결해주지 않으면서 주민들이 거주지 주변 산의 나무를 무차별로 베어내면서 산이 황폐화되고 태풍이나 폭우 등이 왔을 때 강과 저수지의 밑바닥이 높아지면서 홍수가 일어나 경작지에 큰 피해를 주고 사막화되는 악순환이 반복되고 피해가 누적되었기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북한은 치산치수에 실패한 나라다.

중학교 3학년 때 당시 음악 선생님이 한국의 공중 화장실이 깨끗해지는 날 통일이 될 것이라고 말씀한 것을 기억하고 있다. 그 선생님 말을 따라 해보자면, 북한이 한국만큼 산에 나무를 심어서 주민들이 수해 걱정 없이 맘 놓고 농사를 지을 수 있는 날이 오면 한국은 통일될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을 해본다. 지난 주말도, 이번 주말도 저물어 가는 한 해, 열심히 살아온 일상을 벗어나 잠시나마 만산홍엽의 가을기운을 즐기기 위해 차리고 나선 관광객을 태운 전세버스가 전국의 고속도로 전용차선을 가득 메운 채 남쪽으로 동쪽으로 북쪽으로 끝없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있다. 해방 이후 지난 95년까지 우리가 산에 심은 나무만도 55억 4천만 그루, 조림면적 224만 3천 헥타, 20세기 후반 세계사의 유일한 기적이라고 부르는 한국의 산림녹화를 위해 온 국민이 동참하고 애쓴 노력이 없었다면 이런 행렬이 과연 가능이라고 할까 으쓱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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