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용우 서울디지털대학교 부동산학과 객원교수(전 학부장)
정용우 서울디지털대학교 부동산학과 객원교수(전 학부장)

[한국농어촌방송/경남=정용우 서울디지털대학교 부동산학과 객원교수(전 학부장)] 어제는 반성 장날이었다. 이곳 시골에서 혼자 생활하다 보면 장날에는 괜스레 마음이 들뜬다. 어릴 적 할아버지, 아버지와 15리길 반성 장에 가서 소 팔고 그 돈으로 돼지국밥 한 그릇 사서 먹던 추억들이 생각나서일 게다. 우리 집에서 걸어서 약 30분 거리에 있는 동창 친구도 나와 같은 마음이었나 보다. 서울서 직장 다니다가 은퇴한 후 이곳 고향에서 전원생활 하겠다고 이사 온 친구다. 전화가 왔다. “어이 친구! 집에 있나? 뭐하노?” 이쯤 되면 벌써 말 안 해도 안다. 반성 장에 가서 돼지국밥 한 그릇 먹고 오자는 이야기다. 그대로 실행했다. 식사 후 이것저것 필요한 물품 몇 가지 사기 위해 시장을 돌아본다. 내가 고구마를 조금 사려고 했더니 자기 집에 고구마 많이 있으니 가져가란다. 함께 차를 타고 친구동네 어귀에 들어서는데 마을 초입에서 200~300미터 떨어진 곳에 키가 큰 나무 두 그루가 눈에 확 띄었다. 그전에는 그냥 잎이 무성하게 덮여 있어 큰 나무 한 그루가 서 있는 줄 알았다. 자세히 보니 두 그루다. 거의 붙어 있어 한 그루처럼 보였을 뿐이다. 혼인목(婚姻木)이었다.

혼인목이라고 알아차리는 순간, 며칠 전 참석했던 친구 자녀 결혼식 주례 선생님 말씀이 생각났다. 이날 결혼식의 주인공인 신랑 신부 두 사람은 모두 현직 교사였다. 그래서인지 신랑 아버지 친구인 어느 중학교 교감 선생님이라는 분이 주례를 섰다. 그런데 그분의 주례사가 보통의 주례사와는 달리 특색이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예컨대 보통의 경우, 주례사에서 많이 인용되고 있는 ‘부부는 일심동체(一心同體)다’라고 하는 이 부분을, 이분은 ‘부부는 일심동체가 아니고 이심이체(二心二體)다’고 했다. 그러면서 ‘서로 다름을 인정해야 한다’는 것을 강조했다. 그래야만 결혼생활이 오랫동안 행복하게 유지될 수 있다는 논리를 폈다. ‘참 일리 있는 말씀이다’라는 생각을 해보았다.

우리는 ‘연리목(連理木)’이라는 말을 알고 있다. 연리목은 나무와 나무가 맞닿아서 더이상 비켜설 곳이 없을 때 서로의 장벽인 껍질을 벗고 두 그루의 나무가 한 그루로 합일한 것을 일컫는다. 두 그루의 나무가 한 그루로 합일한다는 것은 살을 에는 아픔을 딛고 이룩하는 위대한 사랑이다. 짧게는 몇 년, 길게는 수십, 수백 년을 거쳐 이루게 되는 완성이다. 말하기는 쉬울지 몰라도 우리 보통사람이 도달하기 어려운 경지다. 그래서 우리 주변에서 연리목을 보기가 그렇게 어려운지 모르겠다.

연리목의 사랑이 너무 귀하여 흔하지 않다면 ‘혼인목’의 사랑법은 조금 더 대중적이다. 오늘 내가 친구 집을 방문하는 도중에 발견했던 것처럼 조금만 관심을 갖고 살펴보면 혼인목을 쉽게 만날 수 있다. 혼인목이란 서로 같거나 다른 종류의 나무 두 그루가 한 공간에서 자라면서 마치 한 그루의 나무처럼 그 모양을 만들어 갈 때 그 한 쌍의 나무에게 붙여주는 이름이다. 이들은 좁은 공간에 어울려 살기 위해 서로에게로 뻗는 가지를 떨어뜨리기도 하고, 필요할 때는 빈 공간을 찾아 뻗어나가기도 하면서 마치 한 그루의 나무처럼 조화를 이룬다. 말하자면 ‘그에게 그늘을 만들지 않으려는 사랑’이다. 그래서 이 혼인목의 사랑은 아름답다. 그들의 사랑은 서로를 위해 각자의 욕망을 덜어내어 완성되는 사랑이다. 나도 있고 그도 있는 사랑이다. 서로 다른 둘의 내가 만나 하나를 이루는 사랑이다. 그러기 위해서 있는 그대로 인연을 수용하는 사랑이고 갈등을 수용하는 사랑이다. 그와 나의 만남을 우주의 섭리로 받아들이고 나도 그도 제각각 욕망의 덩어리임을 인정한 채 불편한 공간을 극복해 가는 사랑이다. 주례 선생님이 말씀하신 이심이체(二心二體)의 사랑법을 닮았다.

결혼생활이란 서로의 다름을 인정하고 그 둘 사이에서 생길 수 있는 갈등을 조화와 균형의 영역으로 탈바꿈시켜나가는 과정의 하나일 것이다. 아내는 남편의 소유물이 아니요 마찬가지로 남편도 아내의 소유물이 아니다. 아내의 생명도 내 것이 아니고 남편의 생명도 내 것이 아니다. 각자의 것이다. 각자가 서로 다르니 갈등이 없을 수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느 순간에 함께 만나 같이 살아가는 것이 결혼생활이다. 원만한 결혼생활이 유지되기 위해서는 두 사람의 뜻이 하나를 향해 상호 조절되고 다듬어져야 한다. 그렇지 못할 경우, 세월이 흐르면서 그 다름은 다시 상대방의 결점으로 확대 재생산되어 결국 파경에 이를 뿐이다. 그저께 결혼한 친구 자녀의 결혼생활이 오늘 내가 우연히 발견한 혼인목처럼 상호 존중과 배려를 실천하면서 균형 잡힌 조화를 이루어내길 기원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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