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주교회(평안동) 담임목사
진주교회(평안동) 담임목사

[한국농어촌방송/경남=김기덕 진주교회(평안동) 담임목사] 내가 알고 있는 한 아버지의 고백이다. 아들의 초등시절부터 보란 듯이 성공시켜야 된다는 강박관념으로 자녀를 양육했다. 아들이 공부에서 실수하는 것을 허용하지 않았고, 성적이 좋지 않을 때는 격려보다는 엄하게 화를 냈다. 아들이 초등학생일 때 숙제를 제대로 하지 않으면 새벽 1시까지도 재우지 않고 숙제시키면서 틀린 것이 없나 매의 눈으로 지켜보았고, 각종 시험일이 공지되면 계획조차 짜지 않는 아들을 대신해 시험 대비 공부일정을 짜는 게 아버지의 임무가 되었다. 칭찬과 격려보다는 온갖 간섭과 핀잔으로 쉴 새 없이 자녀를 몰아붙였다. 그러면서 “이건 다 너를 위한 것이야”라며 자신의 욕심과 잣대와 기준을 못박고 자신의 만족을 채우기 위해 채찍도 일삼았다. 결국 아이는 성장해서 아무런 의욕도 없는 무기력한 모습으로 하루하루 버티다가 조현병을 앓게 되었다. 아버지는 뒤늦게 후회하며 얼마나 아들이 숨통이 막히고 답답했을까 크게 뉘우친다고 했다.

오늘날 진정한 부모에게 있어야 할 따뜻한 온정과 부드러운 권위는 사라지고, 삐뚤어진 온정주의와 난폭한 권위주의로 병들어가는 부모들이 많다. 사회가 발전할수록 지식성장과 과도한 출세욕심으로 부모가 병들어 있다. 그것이 고스란히 자녀에게 전염된다. 오늘날 많은 부모들이 자녀를 미성숙하고 판단력이 부족하고 여리고 약한 존재로 간주하여 과잉보호하고 지시하고 통제하는 방식으로 자녀를 대한다. 자녀가 판단해야 할 일을 부모가 대신 판단해서 의사결정을 해버리는 일이 허다하다. 자녀가 해야 할 말과 행동을 부모가 대신 나서서 모든 것을 해결하고 결정해주는 일들이 비일비재하다. 부모 생각에는 자녀가 아직 약하고 부족하니까 부모가 보호해주고 대신해줘야 한다는 생각의 틀이 강하다. 이것이 과잉보호이며 지나친 간섭이 된다.

부모의 과잉보호와 지나친 간섭이 가속화될수록 자녀안에 있는 잠재력과 능동성과 자율성은 점점 더 소멸된다. 이런 자녀는 세상을 경험할수록 스스로 할 수 있는 자립심은 점차 없어지고 수동적인 태도와 습관이 그 몸 안에 익어지게 된다. 자신이 무엇을 원하는지 생각하지 않게 되고, 의사표현이나 주장도 하지 않게 된다. 결국 자신의 결정권이 사라진다. 자녀가 아직 약하고 판단력이 부족하다고 생각하니까 부모는 과잉보호하며 간섭하고 지시하고 명령하게 된다. 그것이 내적인 강압이 되고 자녀 스스로가 자기 자신을 억압하고 통제하게 되어 결국 아무 것도 못하게 되다. 사소한 일로도 늘 불안해하고 두려워하고 조심스러워하고 지레 겁을 먹고 피해버리게 된다. 자녀를 돕겠다고 나선 부모의 과도한 욕심이 오히려 자녀의 정체성, 자존감, 자신감을 잃게 만들어 쉽게 모든 일에 두려움을 느끼게 만든다.

오늘날 많은 부모들이 자식을 잘 돌보겠다는 과잉보호로 자녀를 망치고 있는 것이다. 자녀를 신뢰해주고 부모가 자녀를 대견하게 생각하고 나보다 낫다고 생각하고 매사에 자녀의 자율성과 의사결정을 존중해 주어야 한다. 그러다 보면 결국 자녀는 자아정체성이 확고해지고 상황 판단력과 스스로에 대한 자존감도 높아져 공부든 일이든 스스로 개척할 수 있는 자립성이 강해진다. 물론 어느 부모나 자녀가 혹시나 잘못될까 하는 불안한 마음이 모두에게 있을 것이다. 그럼에도 부모 자신의 잘못된 온정주의와 그릇된 권위주의를 내려놓아야 자녀들이 숨을 쉴 수 있다. 부모가 세상을 더 크게 보고, 더 길게 보고, 사소한 사건들에 좌우되지 않도록 중심을 잡아야 한다. 자녀의 능동성과 자율성을 살려주고 수동적이고 소극적인 사람이 되지 않도록 부모 자신부터 먼저 그릇된 교육문화를 바꾸어야 한다.

저작권자 © 한국농어촌방송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