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청도사 김일손의 상소 26개 조목 중 21번째 조목은 ‘우후(虞候)를 없애고 평사(評事)를 다시 두어야 합니다.’이다.

“예로부터 비적(匪賊)을 변경안에 두고서 화를 받지 않는 경우가 없었습니다. 지금 그들을 급하게 몰아붙이면 난을 일으킬 것이요, 너그러이 대하면 날로 번성하여질 것이니, 처리할 바 방책을 모르겠습니다.

신이 들으니, 왜인들 가운데서 노비를 옛날에는 사고 팔 수 있었다 하는데, 이제 우리 백성에게 내지(內地)로 사들일 수 있도록 허락하여 백성들 축에 끼워 넣는다면 역시 약화시키는 한가지 계책이 될 것입니다. 변방 백성들이 혹시 기회를 타서 살해하고 그 자취를 없애버리면 다시 생포(生捕)하여 이열(李烈)과 같은 욕을 보지 말도록 해야 할 것입니다.

신의 생각에는, 남쪽 오랑캐의 근심이 점점 커지는데 처리할 계책을 세우려 해도 장수를 보좌할 자가 없으면 불가합니다. 서기(書記)를 두는 것은 옛 법이고, 문관과 무관을 교대로 파견하는 것은 지금 법입니다. 신은 원하옵건대, 우후(虞候)를 없애고 다시 평사(評事)를 두는 것이 좋겠습니다.

이어서 22번째 조목은 “유향소(留鄕所)에 책임을 지워 풍속을 바로잡으소서”이다. 유향소는 조선시대 지방 군현의 수령을 보좌하던 자문기관으로 그 지방의 유력자로 구성하고 지방자치에 활용하였다.

“국가에서 유향소를 설치하고 혁파한 것이 한결같이 않습니다. 의견을 말하는 사람이 분분하였는데, 선왕께서 기어이 그대로 두신 것은 궁벽한 촌이나 동떨어진 시골에서 감사나 수령이 미처 알지 못하는 잘잘못을 규찰하자는 것으로, 옛날 여사(閭師) 족사(族師)와 같은 취지를 물려받은 것이었습니다. (여사, 족사는 중국 주나라의 관직명인데 지방관에 예속되었다.)

지금은 단지 향리를 상대로 그들의 비위를 적발하여 속죄금이나 받아내고 마는 한갓 놀음에 지나지 않고, 시골 풍속에 대해서는 전혀 바로잡지 못하고 있습니다. 또 향사(鄕射)·향음(鄕飮)·양로(養老) 등의 예(禮)는 착한 것과 간사한 것을 가려내고 예의와 풍속을 바로잡으려는 것으로서 법에도 나타나 있으나, 속리(俗吏)들은 태만하여 시행하지 않고 있습니다. 신은 원하옵건대, 3년 후에 이런 일을 유향소에 책임을 지워 수시로 수령에게 보고하고 시행하게 하소서.

무릇 한 고을 사람이라면 귀천을 따지지 말고, 효성과 우애가 있고 인척들과 화목하는데 한 가지 착한 점이 있는 사람이라면 상종하고 나쁜 자는 상종하지 않을 것이며, 크게 착한 자는 수령한테 알리고 감사에게 보고하여 표창하고, 크게 나쁜 자는 감사에게 보고하여 마을 밖으로 추방하던 주(周)나라 법을 적용하는 것이 좋을 것입니다.

만일 인륜 도덕을 범한 자로써 장형 이상의 죄를 범한 자 이상은 모두 북방에 이주시켜야 합니다. 강제로 들어가 살게 한 자는 다만 그 지방을 충실케 하기 위한 것이어서 본디 한 가지 죄도 없는데, 어찌 죄가 있는 자를 아깝게 여길 것이 있겠습니까. 헌부(憲府)에서 경재소(京在所)를 독책하여 향풍(鄕風)을 살펴서 향원(鄕員)이 직책에 응하지 않는 자가 있거든 징계하는 것이 또한 백성을 교화시켜 아름다운 풍속을 이루는 한 가지 방도가 됩니다.

아울러 23번째 조목은 “세창(稅倉)을 납세(納稅)하는 곳에 설치하소서.”이다.

“양식은 백성들의 하늘이요, 나라의 명맥(國脈)으로서 관계되는 바가 가볍지 않습니다. 선왕(성종)때에 일찍이 가흥(可興) 세창을 설치하고자 하여 기와와 재목을 이미 갖추었다가 도중에 그만두고, 조세로 받은 곡식은 노적(露積)하여 나무로 시렁을 매고 울타리를 쳤습니다. 먼 곳의 백성들은 손해를 입고 가까운 곳의 백성은 이익을 노리니 그 폐단은 한두 마디로 말할 수 없습니다. 그런데 올해에는 법으로 그것마저 못하게 하니 사주(私主: 공물(貢物)을 바치는 자에 대신하여 공물을 바치고, 납공자에게 징수를 하는 사람들)와 세금 받는 관리들은 더욱 보호를 받지 못하여 빚지는 것이 틀림없이 많을 것입니다.

가흥(可興)의 예로 미루어보아, 다른 도의 경우도 또한 미루어 추측할 수 있을 것입니다. 신은 원하옵건대, 풍년을 기다려 창고를 짓고 담을 쌓아서 도둑을 막고 장맛비에 대비하도록 하소서.

창덕궁 인정전 (사진=김세곤)
창덕궁 인정전 (사진=김세곤)
창덕궁 인정전 안내판 (사진=김세곤)
창덕궁 인정전 안내판 (사진=김세곤)

 

저작권자 © 한국농어촌방송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