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95년 10월 19일에 헌납 김일손이 경연에 참석할 것과 윤탄의 금부 관직을 체직시키기를 아뢰었다.

"상체가 미령하시면 진실로 경연에 나오심이 불가합니다만 경연이 아니고서는 여러 신하를 접대할 기회가 없습니다. 더구나 학문하시는 초기에 있어서 경연에 더욱 부지런하시지 않을 수 없습니다.

윤탄(尹坦)은 충청 감사이었을 때, 중 의초(義超)를 좋아하여 항상 말을 주어 따르게 하고, 또 관기(官妓)를 주어 즐기게 하였으며, 어떤 범죄자가 의초 때문에 벌을 받지 않기도 하였습니다. 지금의 탄은 곧 전일의 탄으로서 그 심술(心術)이 아직도 전과 같사오니, 의금부의 관직을 체직시키소서."

하고, 전교하기를,

"윤탄은 충청도의 국안(鞫案)이 오는 대로 처리하라."

하였다.

윤탄은 연산군의 외척이다. 성종의 세 번째 왕비 정현왕후(중종의 모친)의 숙부인데 성종의 옹호로 충청도 관찰사가 되었다.

그런데 연산군은 11월1일에 윤탄을 벼슬을 바꾸어 임명하였다.

10월21일에는 헌납 김일손이 팔도에 어사를 보내기를 아뢰었다.

"이제 처음 정사를 하심에 있어서 백성을 근심하는 마음이 있을지라도 백성들이 알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성종 초년에도 문폐사(問弊使)를 보내어 팔도에 순행하게 하였습니다. 지금도 강명(剛明)한 조관을 선택하여 어사(御史) 임무를 띠워 나누어 보내서, 수령(守令)들에게 위의 의향을 알게 한다면 백성들이 실지 은혜를 받게 될 것입니다."

이러자 연산군이 그대로 따랐다.

10월30일에 천둥과 번개가 쳤다. 11월1일에 연산군이 승정원에 전교하였다.

"어제의 뇌변(雷變)으로 내가 매우 두려운데, 어찌하면 재앙을 풀 것인가?"

승정원이 아뢰었다.

"뇌우(雷雨)가 제때 아닌 데 일어났으니 이보다 큰 변이 없습니다. 예전에 이런 변을 만나면 혹은 구언(求言)하고 혹은 죄수를 풀어주어 하늘의 꾸지람에 보답하였습니다."

이러자 연산군은 원상(院相)을 불러 의논하여 경범죄 죄수를 풀어주라고 전교하였다.

이어서 연산군은 의정부에 전지(傳旨)하여 널리 구언을 청하였다.

"내가 듣건대, 천둥 번개는 곧 양기의 발동으로서 봄에에 발동하였다가 가을에 거두는 것이 천지 음양의 순서이다. 그런데 지금은 10월 그믐이니, 뇌성이 들릴 때가 아니고 번개가 보일 때가 아닌데, 음양의 기운이 어그러져서 뇌성과 번개가 있으니 어찌 큰 재변이 아닌가.

그 잘못된 조짐을 미루어 증험하니 원인이 나 한 사람에게 있는 것이다. 나 같은 박덕한 몸으로 선대의 큰 기업(基業)을 이어받게 되니, 맡겨진 책임을 다하지 못할까 두려워서 아침저녁으로 조심하며 얼음 위를 걷듯이 지냈다.”

‘조심하며 얼음 위를 걷듯이 지냈다.’ 는 교지를 읽으면서

노자 <도덕경> 제15장의 여유(與猶)가 생각난다. 1)

“ 옛날에 도를 얻는 이는 미묘하고 그윽히 통달하여

그 깊이를 알 수 없었다. 알수 없지만 억지로 말해보라면,

여[與]여! 살 언 겨울 냇물을 건너듯 조심하고

유[猶]여! 사방에서 쳐들어오는 적을 경계하듯 신중하며”

교지는 이어진다.

“그런데도 오히려 하늘이 좋지 못하고 편안치 못한 이변(異變)으로 꾸짖어 알려 주니, 어찌 원인이 없이 그럴 것인가. 나의 덕이 굳지 못하고 행실이 닦아지지 못하여 그런 것인가?

상하 간이 꽉 막히어 서로 소통하지 못하는가?

기강이 해이하여 능히 사기를 진작(振作)하지 못하는가?

임금의 집안과 혼인한 인척이 큰 벼슬에 있으되 제거하지 못하는가?

궁중에서 왕의 총애를 받는 여인이 정치를 어지럽히는 일이 성행하여도 금하지 못하는가?

권세 있고 총애받는 신하의 횡포가 심하여 정사를 흐려놓는가?

탐람 횡포하는 무리가 벼슬자리에 있어서 우리 백성을 병들게 하는가?

상과 벌이 중도를 잃어서 인심을 만족시키지 못하는 일이 있는가?

어질고 슬기로운 이가 물러가 숨어서 함께 하지 못하는 일이 있는가?

송사가 밀리고 쌓였어도 관청의 관리가 처리하기를 게을리하는가?

부역과 세금이 많고 과중하여 민생이 고달픈가?”

연산군은 이렇게 10가지 문제를 나열한다.

“그 밖에 필부(匹夫) 필부(匹婦)의 원망과 호령의 실수를 내가 어찌 다 알리오. 여러 신하들의 바로잡고 구원하는 힘을 입어 하늘의 견책에 보답하기를 바라니, 중외의 대소 신민과 한산인원(閑散人員)들로 하여금 각기 지금의 폐단을 진술하되 실봉(實封 사연의 비밀이 누설되는 것을 막기 위하여 봉함하는 것)하여 알리게 하라."

연산군이 구언을 청한 것이다.

1) 남양주시 다산 정약용 생가의 당호가 ‘여유당(與猶堂)’이다.

 

여유당(與猶堂) (다산 생가) (사진=김세곤)
여유당(與猶堂) (다산 생가) (사진=김세곤)
창덕궁 숙장문 (이곳을 지나면 희정당, 대조전이 있다) (사진=김세곤)
창덕궁 숙장문 (이곳을 지나면 희정당, 대조전이 있다) (사진=김세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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