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가장 잘 이해하는 여성들인
내 딸아이들로 인해
나는 요즘
인생을 다시 사는 느낌이다

정숙자 문학박사
정숙자 문학박사

[한국농어촌방송/경남=정숙자 문학박사] 아침이면 눈을 뜨고 누군가에게 차려주는 밥상, 늘 하는 설거지, 그리고 약간의 나를 위한 시간의 한 부분들 사이에 미지근해져 버린 차 한 잔을 마신다.

외부세계와의 차단막 역할을 하는 있던 커튼을 젖히면 한껏 밀려오는 햇살, 여름이 주는 약간의 신선함마저 느끼게 하는 바람, 그리고 어제도 오늘도 있는 호숫가의 은빛 물결, 그 위를 유유히 날아다니는 철새, 나무꼭대기에 위에 자리 잡은 제법 큰 새 둥지, 소나무 가지들의 작은 떨림을 알리는 흔들림, 간혹 인기척에 놀라 마구잡이로 짖어대는 개소리, 그 틈에서 들려오는 인간들의 기계음들….

한 잔의 차가 바닥을 보이면 그때는 내가 있는 현실로 소환되는 시간이다. 어깨는 무거워지고 아팠던 팔꿈치는 더욱 신음소리를 낸다. 내가 가지는 사소함의 행복을 지나면 난 사람들 속에 누군지 모를 한 사람으로 서 있다. 나는 그런 나를 데리고 딸아이를 동행 삼아 길을 나선다.

첫 아이가 딸이라는 사실을 알고는 화가 난 사람들이 있었다. 내가 낳은 딸인데 그대들이 뭐라고 기분이 나쁜지 이해가 되지 않았고, 이해하려고 노력도 하지 않았다. 둘째 딸을 낳고는 상태는 더욱 심각해졌다. 난 그래도 아무렇지 않았다. 어차피 내 몫이고 나의 딸이기 때문에 그들의 기분 따위는 안중에도 없었다. 단지 그들이 내 마음의 한구석에 밀려나와 애증의 대상이 되었을 뿐이었다. 난 젊었고 그들은 나이가 많았을 뿐이었는데 난 조금도 미안하지 않았다. 내 의지가 있다면 아들은 낳으면 된다고 생각했다. 그들의 기다림이 없는 것에 대해, 배려가 없는 것에 대해 그것을 무지로 돌려버렸다.

그런데 지금 난 그 딸아이들을 통해 내 인생을 다시 살고 있는 느낌이다. 나를 가장 많이 닮은 DNA와 나를 가장 잘 이해하는 여성이라는 것과 동시대를 살고 있는 동질감으로 인해 이들은 오로지 내 편이다. 남편은 이름대로 혹 내편이 아닐 수 있지만 딸들은 이해심 많은 친구 같은 또는 엄마 같은 존재다. 내 생각의 틀에 갇혀 판단이 흐려지고 감정선을 다스리지 못할 때 딸아이는 긍정적인 길로 나를 데리고 나간다.

갱년기로 우울해서 아무 말이나 막 던져 말로써 악업을 짓고 있을 때도 아이는 두청이라고 말한다. “엄마 두 번째 청춘 즐겁고 행복하게 지내”라고 말하면서 늘 내 손을 꼭 잡아준다. 그리고 부른다. “두청인 엄마 자야”, 친구처럼 불러주는 이름이 난 싫지 않다. 남편은 버릇없이 엄마 이름을 부른다고 혹 야단을 하지만 난 그렇게 불러주는 아이의 마음을 너무 잘 알고 있어 고맙게 느껴진다. 우리는 구구절절한 이야기를 할 필요도 없다. 몇 마디의 말과 얼굴표정을 보면 다 안다. 언제나 친구처럼 있을 딸들에게 사랑한다는 말을 전하며 긴 골목길을 함께 걷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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