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산군은 김종직의 「조의제문」을 계속하여 읽는다.

항량(項梁)은 남쪽 초의 장군의 후손으로 梁也南國之將種兮,

어호(魚狐 물고기와 여우)를 뒤이어 대사를 일으켰네. 踵魚狐而起事。

백성의 소망에 부응하고 진시황에 의해 끊어졌던 나라의 제사를 보존하였네.

항량의 도움으로 건부(乾符 천자의 표시인 상서)를 쥐고 제위에 오름이여! 握乾符而面陽兮,

천하엔 진실로 미씨(芈氏)보다 더 높은 이 없도다. 天下固無大於芈氏。

항량(項梁)은 항우의 숙부로 진승(陳勝)과 오광(吳廣)의 뒤를 이어 큰일을 도모했다. BC 209년, 진승과 오광이 대택향(大澤鄉, 지금의 안휘성 숙현 安徽省 宿縣)에서 농민반란을 일으켜 ‘초(楚)를 크게 넓힌다.’는 뜻의 ‘장초(張楚)’ 정권을 세우자, 초(楚) 말기의 명장 항연(項燕)의 아들인 항량도 조카인 항우와 함께 회계(會稽)에서 군대를 일으켰다.

기원전 208년에 진승(陳勝)이 죽었다. 항량은 초(楚) 회왕(懷王)의 후손인 미심(芈心)을 회왕(懷王)으로 옹립하였고, 스스로 무신군(武信君)이라 하였다.

장자(長者)를 보내어 관중(關中)에 들어가게 함이여! 遣長者而入關兮,

족히 그 인의(仁義)를 보겠도다. 亦有足覩其仁義。

회왕은 항우 대신 유방을 관중에 들여보냈으니 그 인의를 충분히 알 수 있었다.

양흔낭탐(羊狠狼貪 : 항우를 비유함)이 관군(冠軍 송의를 말함)을 마음대로 죽임이여! 羊狠狼貪, 擅夷冠軍兮,

어찌 잡아다가 제부(齊斧 : 정벌하는 도끼)에 기름칠 아니했는고.

胡不收而膏齊斧?

양흔낭탐(羊拫狼貪)은 사마천의 ≪사기(史記)≫ 항우본기(項羽本紀)에나오는 말인데 ‘항우의 말과 행동이 거친 것은 양 같으며 탐욕스럽기는 이리 같다.’는 의미이다. 관군(冠軍)은 초회왕의 상장군(上將軍)인 경자관군(卿子冠軍) 송의(宋義)를 말한다.

BC 207년에 항우는 송의가 제나라와 모의해 초나라를 배신하려 했다는 구실로 제멋대로 죽였다. 그런데도 초 회왕은 항우를 잡아다가 처형하지 못했다.

아아, 형세가 대단히 어긋난 것이 있었으니, 嗚呼! 勢有大不然者兮

나는 회왕이 더욱 두려워서 그랬으리라 여겼네. 吾於王而益懼。

끝내 배신당하여 해석(醢腊 젓과 포. 시해당함을 비유함)가 되었으니, 爲醢腊於反噬兮,

하늘의 운수가 크게 어긋났도다. 果天運之蹠盭。

사마천의 『사기(史記)』 ‘항우본기(項雨本紀)’에 의하면 항우는 스스로 왕위에 올라 서초패왕(西楚覇王)이라 하고, 팽성(彭城)을 도읍으로 정했다. 회왕은 높여서 의제(義帝)라고 하였지만 침현(郴縣, 지금의 湖南省 郴州)으로 도읍을 옮기도록 내몰았다.

의제는 항우에 의해 침현(郴縣)으로 쫓겨가는 중에 항우의 명을 받은 영포의 장수 등에 의해 시해되었다. 나중에 유방은 항우를 공격해 초한전쟁(楚漢戦争)을 일으키는 데 의제의 암살을 중요한 정치적 명분으로 내세웠다.

침강의 산은 우뚝이 하늘에 치솟았는데 郴之山磝以觸天兮,

햇빛은 침침하여 저물녘에 가깝고. 景晻愛以向晏。

침강의 물은 밤낮으로 흘러가는데 郴之水流以日夜兮,

물결은 넘쳐흘러 되돌아올 줄 모른다. 波淫泆而不返。

천지도 장구(長久)하듯,한(恨)도 어찌 다하리요. 天長地久, 恨其可旣兮,

그 혼은 지금도 떠돌아다니는구나. 魂至今猶飄蕩。

내 마음이 금석(金石)을 꿰뚫음이여! 余之心貫于金石兮,

왕이 문득 꿈속에 임하였네. 王忽臨乎夢想。

나의 충성된 마음은 쇠와 돌을 뚫을 만큼 굳세기에 회왕(의제)이 홀연히 김종직의 꿈에 나타났다.

자양(紫陽 주자를 말함)의 노련한 필법을 따라, 循紫陽之老筆兮,

떨리는 마음을 공손히 가라앉히며 思螴蜳以欽欽。

술잔 들어 땅에 부으며 제사 지내니 擧雲罍以酹地兮,

바라건대 영령은 와서 흠향하소서.’ 冀英靈之來歆。

이게 조의제문 전문이다.

김종직 생가 (사진=김세곤)
김종직 생가 (사진=김세곤)
김종직 생가 앞 동상(사진=김세곤)
김종직 생가 앞 동상(사진=김세곤)
김종직 동상 뒷 면 (사진=김세곤)
김종직 동상 뒷 면 (사진=김세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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