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98년 7월17일에 연산군은 김종직이 지은 조의제문에 대한 해석을 한 후에 대신들에게 의견을 물었다. (연산군일기 1498년 7월 17일 2번째 기사)

가장 먼저 정문형·한치례·이극균·이세좌·노공필 등이 김종직을 부관참시하라고 의견을 말하였다. 그러면 정문형과 이극균 · 이세좌 노공필에 대하여 알아보자. 출처는 주로 「한국민족대백과사전」에 의존한다.

정문형(1427∼1501)은 1447년에 별시문과에 급제하여 감찰을 거쳐 예조좌랑으로 궐내에서 다른 관리들과 더불어 기생을 불러들여 가무음주한 죄로 장형(杖刑)을 받았다.

1455년(세조 1) 교리로서 좌익원종공신 2등에 녹훈되었고, 사간을 거쳐 예조정랑으로 하다가 사인 재직 시에 또 한 번 기생을 불러들여 음주한 죄로 장형을 받았다. 그는 병조참판·평안도관찰사·형조판서·중추부지사·황해도관찰사등을 1489년에 우참찬이 되었다. 이어 호조판서·세자시강원빈객·경상도순변사를 거쳐 1492년 우찬성, 1494년 공조판서로 산릉도감제조(山陵都監提調)를 겸직하였다. 1495년에 판중추부사, 이어 우의정에 승진되고 궤장(几杖)을 하사받았으나 용렬하고 탐학한 재상이라는 탄핵을 받고 영중추부사로 체직되었다.

이극균 (1437∼1504)은 이집(李集)의 증손이며, 할아버지는 이지직(李之直), 아버지는 우의정 이인손(李仁孫)이다. 이세좌(1445∼1504)는 할아버지가 우의정 이인손, 아버지는 이극감으로, 이극균의 조카이다.

선조 때 벼슬을 한 월정 윤근수(1537∼1616)의 「월정만록」에 의하면, 광주이씨(廣州李氏) 둔촌(遁村) 이집은 고려말에 과거에 급제하여 관직이 판전교시사(判典校寺事)에 이르렀다. 그는 세 아들을 두었는데 모두 과거에 급제하였다. 장남 이지직은 호조 참의, 보문각 직제학을 지냈다. 이이직의 막내아들 이인손은 우의정을 지냈으며 이인손은 다섯 아들을 두었는데 모두 과거에 급제하였다. 장남 이극배는 영의정을 지냈고, 차남 이극감은 형조 판서를 삼남 이극증은 판중추부사를 지냈다. 무오사화를 일으키게 한 주역인 4남 이극돈(1435∼1503)은 찬성을 지냈고, 5남 이극균은 좌의정을 지냈다.

이극균은 1456년에 급제하여 1474년에 전라도 관찰사가 되었고, 1484년 대사헌을 거쳐 1486년에는 형조판서에 올랐다. 이어 의금부 당상·이조판서를 역임하였다. 1498년에는 좌찬성을 하였다. 그런데 그는 1504년 갑자사화 때 조카 이세좌와 함께 연루되어 인동(仁同)으로 귀양 가서 사약을 받고 죽었다.

이세좌는 1477년에 급제한 뒤 1485년에 이조참판, 한성부판윤·호조판서를 거쳐, 1497년에 이조판서에 임명되었다. 그런데 그는 1504년 갑자사화 때 연산군의 생모 윤비(尹妃)를 폐위할 때 간언하지 않았고, 이어 형방승지로서 윤비에게 사약을 전하였다 하여 다시 거제에 이배 되던 중 곤양군 양포역(良浦驛)에서 자살의 명을 받고 목매어 자결하였다.

노공필(1445∼1516)은 영의정 노사신(1427∼1498)의 아들이다. 그는 1466년에 급제하여 홍문관 부제학을 거쳐 병조·이조·예조의 참의와 도승지를 역임하였으며, 1483년 대사헌이 되었다. 1489년에는 조판서가 된 데 이어 6조의 판서를 두루 역임하였으며, 1498년에는 의정부 우참찬이었다.

이어서 유지(柳輊)가 연산군 앞에서 의견을 제시했다.

"김종직의 불신(不臣)한 그 심리는, 죄가 용납될 수 없사오니 마땅히 극형에 처하옵소서."

그다음에 박안성·성현·신준·정숭조·이계동·권건·김제신·이계남·윤탄·김극검·윤은로·이집·김무·김경조·이숙함·이감이 의견을 제시했다.

"김종직이 요사한 꿈에 의탁하여 선왕을 훼방(毁謗)하였으니, 대역부도(大逆不道)입니다. 마땅히 극형에 처해야 하옵니다."

변종인·박숭질·권경우·채수·오순·안처량·홍흥도 말했다.

"김종직이 두 마음을 품었으니 불신(不臣)한 죄가 이미 심하온즉, 율(律)에 의하여 처단하는 것이 편하옵니다."

여기에서 관심 인물은 권경우(1448~1501)이다. 그는 1470년에 급제하여 1496년(연산군 2) 도승지(都承旨)로 승진하였으며, 1498년 1월에 대사헌에 올랐다. 하지만 7월에 무오사화가 일어나 동생 권경유가 주모자로 처형되자 권경우도 강릉부 관노로 배속되었다.

함양 학사루 (사진=김세곤)
함양 학사루 (사진=김세곤)
학사루 안내판 (사진=김세곤)
학사루 안내판 (사진=김세곤)

 

저작권자 © 한국농어촌방송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