햇살과 바람이 포근해지면
겨울 호수의 얼음은 곧 녹을 것이다
나의 삶에도
따스한 바람이 오면
온전하게 나로 흐를 수 있을 게다

정숙자 문학박사
정숙자 문학박사

[한국농어촌방송/경남=정숙자 문학박사] 겨울의 맹추위로 진양호가 얼음으로 채워졌다. 호수의 대부분이 얼어서 겨울의 햇살을 본의 아니게 세상 속으로 밀어내고 있다. 얼음에서 튕겨져 나와서 그런지 인간 속에 들어온 그 햇살도 따뜻하지는 않다. 얼음으로 막고 있는 호수 위에는 철새도 없고 하늘을 품고 산을 받아주던 물은 온데간데없이 투명한 얼음의 실체만이 물과 세상을 뚜렷하게 둘로 나누고 있다.

호수에 비친 세상의 일들을 호수는 오히려 얼음을 통해서 토해내고 있다. 그저 묵묵히 받아만 주던 호수는 이제 세상의 일에 무심해지기로 작정한 모습이다. 산의 나무와 하늘은 예전 같지 않은 물에 대해 어색해하고 있겠다. 변했다고 소곤거리며 거리를 두고서도, 그동안의 묵묵함에 고마워하는 마음이라도 가지기를 바랄 뿐이다.

지금 내 마음이 이 호수와 닮아있다. 얼음이 이 호수를 막고 있듯이 나에게 닥친 이 갱년기가 내 삶의 전체를 거부하고 있다. 치열하게 살아서 그저 온 것이 아닌 버티며 견딘 많은 세월을 품지도 못하고 모조리 부정하고 잘못이라고 말한다. 현재의 존재에 대해서도 강하게 거부한다.

나는 견딜 수 없는 이 공허하고 허전함을 안고 또 길을 걷기 위해 나선다. 사람 속에 있는 나보다 그저 자연의 한 귀퉁이에 있는 내가 덜 불안하기 때문이다. 아무런 말 없이 걷고 또 걷다 보면 호수 위의 얼음도 보이고 나를 따라나섰던 우리 집 강아지도 옆에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나의 이 뚜벅이 걸음이 언제 끝날지 모르지만 오늘도 이 현실의 땅에 발을 딛고 서기 위해 또 오늘도 길을 걸을 것이다. 이 노력마저 부질없다고 느껴질 때면 나는 무엇을 해야 할지 모르겠다. 세상은 그저 물처럼 흐르고 있는데 나는 얼음처럼 세상을 밀어내고 있다. 내 속에 있어야 할 나를 찾는 노력을 해도 나는 여전히 내 삶 속에 있지 않다. 나를 찾는 행위가 점점 부질없음을 느끼며 살아있음이 점점 버거워지는 시간들이 계속된다.

끝없이 치솟는 이 분노는 나의 긍정적인 에너지를 다 태우고 있다. 재만 남아있는 마음만 움켜잡고 오늘을 버티고 내일을 견뎌야 하는 일이 슬프다. 설명할 수 없는 분노가 산처럼 치솟아 하늘에 닿을 것 같다가도 어떤 때는 지하의 수십 층까지 내려간다. 시소놀이처럼 감정이 춤을 추고 있다. 시소를 마주할 사람이 없는 것인지 아니면 나 스스로 마주할 사람조차 거부하는 것인지 모를 일이다.

사람에 대해 실망하고 사람의 말과 감정에 수없이 속고 그저 그들이 가지고 노는 장난감처럼 원하는 대로 움직이고 있는 내 삶에도 호수를 막고 있는 얼음처럼 가식과 가면이 가득하다. 햇살과 바람이 포근해지면 겨울 호수의 얼음은 곧 녹을 것이다. 나의 삶에도 따스한 바람이 오면 온전하게 나로 흐를 수 있을까? 오늘도 걷고 있는 하늘은 푸르다. 바람은 차갑지만 상쾌하다. 자연은 나에게 살아보라고 권하고 있다. 살아갈 이유 있는 가치들을 찾아보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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