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렇게 봄은 화려한데
나는 언제 이렇게 나이가 들어 버린 것일까
나의 봄은 언제 지나갔는지
또는 있기나 했었는지

정숙자 문학박사
정숙자 문학박사

[한국농어촌방송/경남=정숙자 문학박사] 가로수 길을 온통 분홍빛으로 물들였던 벚꽃도, 산기슭마다 채웠던 진달래도 동네길 어귀를 노랗게 만들었던 개나리도 이제 제 역할을 마치고 봄에서 멀어지고 있다. 여름의 문턱에서 봄의 전령사들은 이미 자신의 역할에 한없이 충실하게 지내다가 스스럼없이 자신의 자리를 비워주고 있다. 세월의 흐름에 놀라 뒤늦게 핀 벚꽃들은 부지런한 그들의 친구가 주는 상큼함이라는 잎사귀와 마주하며 멋쩍은 웃음을 지어 보인다. 우리에게 겨울을 잘 견디고 버텨준 보답이라도 하려는 듯 자연은 늘 새로운 모습으로 우리 앞에 선다.

주말에 내린 비로 벚꽃들은 축축한 물기를 머금은 몸을 가누지 못하고 도로 위에 내려앉아 있다. 떨어진 꽃잎들은 자동차가 달리는 가속도를 견디지 못하고 나무와 작별을 고하고 건너편 물 위로 날아간다. 흡사 겨울눈을 연상케 한다. 그러는 모습을 한참을 바라보다가 봄 햇살과 마주친다. 그들은 봄바람에 제 몸을 맡겨두고 순응한 채 그저 바람 속을 헤엄치고 있을 뿐이다.

벚꽃 진 자리에 신록의 새순들이 희망차게 올라와 자리를 잡았다. 그 모습에 미지근한 차 한잔을 들고 창가에 선다. 그대가 봄바람처럼 내게로 온다. 계단을 하나씩 오르며 주위에 핀 잔디꽃에게 말을 걸고 있는 그대에게 창문을 열어 반가움을 표한다. 나와 함께 나란히 창밖을 바라본다. 한동안 우리는 말이 없다. 그 시간에 각자의 생각에서 봄을 느끼고 있을 것이다. 나는 그렇게 생각했다. 상큼한 바람도 간혹 남은 벚꽃도 그리고 내 손에 들린 차 한 잔으로 오늘은 여유롭게 행복하다. 나와 나란히 선 그대는 울고 있다. 미처 알아차리지 못한 것이 미안했다. 무슨 일인지 물었다. 그대의 대답은 내가 알 수도 있는 마음이었다. “이렇게 봄은 화려한데 나는 언제 이렇게 나이가 들어 버린 것일까? 나의 봄은 언제 지나갔는지 또는 있기나 했었는지 모르겠다.”며 울먹인다. 그렇다. 그 이야기를 들으며 나도 우울해진다. 우리의 청춘도 분명 아름답고 화려한 날이 있었을 것이다. 봄꽃처럼 그저 웃음이 나오고 주위도 환하게 만드는 그런 시간이 존재했음을 이제는 기억에서 찾아야 함이 서럽다. 봄이 주는 화려한 모습에서 나도 그대도 그 이상의 것에서 안타까워하고 있다.

우리의 인생이 또 봄을 타고 여름처럼 흐를 것이다. 또 가을을 맞이하고 쓸쓸하고 건조한 겨울을 보낼 것이다. 하지만 그런 흐름이 있기에 나의 자식들이 우리의 자리를 채우고 있다. 변하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도록 오늘은 그대와 많은 이야기를 나누어야 할 것 같다. 이미 져버린 내 청춘을 내가 기억하지 않으면 그 어느 누구도 기억하고 살펴주지 않듯이 이미 져버린 꽃들도 추억하지 않으면 흔적 없이 지워질 것이 못내 안타까운 오늘이다. 신록들은 꽃의 기억을 잠시 접어두라고 위로하면서 내게로 온다. 자신을 기억하고 있는 나를 그들도 격려하면서, 현재를 애써 피하지 말고 마주하며 즐기라고 말하면서 나를 지켜봐 줄 것이다. 그대여 꽃 진 자리에 서 있는 나를 새순이 돋는 자리에 함께 세워 줄 것이다. 활짝 웃고 있는 그대를 이 봄에 다시 보고 싶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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