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세곤 칼럼니스트

[한국농어촌방송=김세곤 칼럼리스트] 1456년 6월2일에 세조는 친국(親鞫)을 계속한다.

세조가 집현전 부제학 이개에게 묻기를, "너는 나의 옛 친구였으니, 참으로 그러한 일이 있었다면 네가 모조리 말하라" 하니, 이개는 알지 못한다고 대답하였다. 임금이 말하기를, "이 무리들은 즉시 엄한 형벌을 가하여 국문(鞫問)함이 마땅하나, 역모 죄를 처리하는 부서가 따로 있으니, 이들을 의금부에 하옥하라." 하였다.(세조실록 1456년 6월2일자)

이개(李塏 1417∼1456)는 고려 말의 대학자 목은(牧隱) 이색(李穡 1328∼1396)의 증손자이다. 세조가 잠저(潛邸 왕이 되기 전에 거주하던 사저 私邸)에 있을 때에, 이개의 숙부 이계전(李季甸 1404∼1459)이 세조와 매우 친하여 세조의 잠저에 자주 출입하므로 이개가 경계하였다. 단종복위 거사가 발각되었을 때 세조가 말하기를, “일찍이 이개가 그런 말을 하였다는 것을 듣고 마음속으로 바보스럽게 여겼더니, 과연 비상한 뜻이 있어서 그런 것이었구나.”하였다. 『연려실기술』에 나온다.

그런데 이계전은 생육신 김시습(1435∼1493)의 스승이었다. 김시습은 다섯 살 때 이계전에게 『대학』과 『중용』을 배웠다. 이계전은 이색의 손자이고 권근의 외손자였는데 세조의 측근이었다. 그는 1453년 계유정난에 참여하여 정난공신이 되었고, 세조 즉위로 좌익공신에 올랐다. (심경호 지음, 김시습 평전) 이렇듯 숙부 이계전과 조카 이개는 다른 모습을 보였다.

사진=의금부 터 표시석. 종각역 1번 출구, SC제일은행 본점 앞에 있다

그런데 공조참의 이휘(李徽)는 사실이 발각되었다는 말을 듣고는 승정원에 나와서 아뢰기를 1), "신이 전일에 성삼문의 집에 갔더니, 권자신·박팽년·이개·하위지·유성원이 모여서 술을 마시고 있었습니다. 성삼문이 말하기를, ‘자네는 일을 알고 있는가?’ 하고 묻기에, 신이 ‘내가 어찌 알겠나?’했더니, 성삼문이 좌중을 눈짓하면서 말하기를, ‘자네가 잘 생각하여 보게나. 어찌 모르겠는가?’ 하였습니다. 신이 묻기를, ‘그 의논을 아는 사람이 몇 사람이나 되는가?’ 하였더니, 성삼문이 대답하기를, ‘박중림과 박쟁도 역시 알고 있다.’하기에, 신이 먼저 나와서 즉시 아뢰고자 하였으나 그러지 못하였습니다." 하였다.

이러자 세조는 사정전에서 이휘를 인견하였다. 이휘의 실토를 듣고 세조는 의금부로 압송된 성삼문 · 하위지 · 이개 등을 다시 대궐로 끌고 오라하고 박팽년 등을 잡아와서 사정전 앞뜰에서 친국했다.

세조는 박팽년(朴彭年 1417∼1456)을 형틀에 묶고 곤장을 치면서 공모자를 밝히라 했다. 박팽년은 "성삼문·하위지·유성원·이개·김문기·성승·박쟁·유응부·권자신·송석동·윤영손·이휘와 신의 아비(박중림)였습니다." 라고 대답했다. 세조가 다시 물으니 대답하기를, "신의 아비까지도 숨기지 아니하였는데, 하물며 다른 사람을 대지 않겠습니까?" 하였다. 이로써 공모자가 14명으로 늘어났다.

세조는 박팽년에게 그 시행 방법을 물으니 대답하기를, "성승·유응부·박쟁이 모두 별운검(別雲劍 : 운검(雲劍)을 차고 임금을 옆에서 모시던 무관의 임시 벼슬)이 되었으니, 무슨 어려움이 있겠습니까?"라고 대답했다. 그 시기를 물으니 대답하기를, "어제 연회에 그 일을 하고자 하였으나 마침 장소가 좁다 하여 운검을 없앤 까닭에 뜻을 이루지 못하였습니다. 후일에 관가(觀稼)할 때 노상(路上)에서 거사하고자 하였습니다." 하였다.

박팽년은 세조가 농작물의 작황(作況)을 살펴보는 행사에 갈 때 도로변에서 거사하는 2차 계획을 실토했다. 2차 거사도 계획되어 있었음은 지금까지 별로 안 알려진 사실이다.

한편 박팽년은 1455년에 충청도관찰사를 하였다. 집현전 학사들은 문장과 시 그리고 경학(經學)에 뛰어난 사람이 많았다. 사람들은 성삼문의 문장, 이개의 시, 유성원의 경학을 으뜸으로 쳤다. 그런데 박팽년은 문장과 시 그리고 경학에 모두 능했기 때문에 그를 집대성(集大成)이라 불렀다.

1453년 계유년에 김종서가 죽음을 당하고 세조가 영의정이 되어서 의정부에서 연회를 베풀었는데, 박팽년도 참여하여 시를 지었다.

사진=사육신 역사관에 있는 박팽년의 정부 연(政府宴) 시

묘당 깊은 곳에 풍악 소리 구슬프니 廟堂深處動哀絲
오늘 같은 세상만사가 어찌될지 도무지 모를레라. 萬事如今摠不知
버들은 푸르른데 동풍은 가늘게 불어오고 柳綠東風吹細細
꽃은 밝은데, 봄날은 길고 기네. 花明春日正遲遲

선왕이 큰 업적은 금궤에 거두고 2) 先王大業抽金櫃
성주의 큰 은혜는 옥잔에 취하도다. 聖主鴻恩倒玉巵
즐기지 않으려 해도 어찌 길이 즐기지 않으랴 不樂何爲長不樂
노래를 화답하며 취하고 배부르니 태평한 때로다 賡歌醉飽太平時

세조는 이 시를 사랑하여 현판에 새겨서 의정부에 걸게 하였다. 그런데 야사는 단종복위 거사가 일어난 후에 세조가 현판을 철거했다고 전한다.

세조는 박팽년을 국문한 후에 이개를 곤장치고 문초하니, 이개의 대답도 박팽년과 같았다.

1) 공조참의 이휘는 이개의 첫째 매부이다.
2) 금궤(金櫃)는 중국 한 나라 때에 옛 고전과 역사 자료를 쌓아 둔 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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